황우여의원이 부인과 급한 볼 일이 있어 부산에 갔을 때 일입니다.

바삐 거리를 지나고 있는데 누군가 급하게 부르는 분이 있어 뒤를 돌아보니 중년의 남자분이 뛰어와 반갑게 인사를 했습니다. 황의원은 아무리 기억을 더듬어도 모르는 분이라 너무 미안해 하고 있는데 그 분이 기억 나지 않는 것도 당연하다며 십 수년전 형사사건에 연루되어 억울한 누명을 쓰고 재판을 받았던 사람이라며 자기 소개를 했습니다. 당시 집안이 넉넉치 못하여 변호사도 선임하지 못하였음에도 황판사의 꼼꼼한 사실심리를 통하여 무죄판결을 받았다고 합니다. 그 당시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무죄판결보다 권위적인 법원 분위기와는 달리 파렴치한 피의자 하나 하나에게 경어를 쓰시며 성실한 재판을 진행하시는 것을 보고 그 인상이 강렬하게 남아 세월이 흘렀어도 황판사를 잊지 않았다고 합니다.

지금도 법에 연루되어 황판사와 인연이 있던 분들이 어떻게 수소문 하였는지 집으로 찾아와서 인사 하는 분들이 가끔 있다고 합니다. 인간 황우여는 한 사람의 형사피의자라도 억울한 일이 없어야겠다는 인간존중에 대한 철저한 신념과 겸손이 천성인 사람입니다. 황우여 의원은 인권을 존중하고 예의에 벗어남이 없는 행동이 몸에 베어있습니다.

 

황우여의원이 총각시절에 있었던 일입니다.
출근하기 위해 길을 걷고 있는데 행려병자가 길가에 쓰러져 있었습니다. 그 누구도 이 사람 에게 관심을 갖는 사람이 없어 출근에만 바빴습니다. 황 의원은 출근하는 도중에 행려 병자를 병원에 데리고 가 치료해주고 출근해서 행려자를 돌봐주는 기관에 수속을 밟아주셨다고 합니다.황우여 의원은어려운 처지에 있는 이웃을 보면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사랑이 넘치는 교회의 장로입니다.

황우여의원은 배고픈 것, 아픈 것, 못배운 것 이 세가지를 안타까워하시고 어떤 상황에서도 이 세가지는 인간의 기본권으로 도와주어야 한다는 신념을 갖고 계십니다. 현재 국회 인권포럼 대표로서 활발한 활동을 하고 계십니다.

 

제물포고등학교 시절 양희덕이라는 친구가 있었습니다. 양희덕 친구가 너무 가난해서 가슴아프게도 영양실조로 죽게되었습니다. 황우여의원은 이 때 일을 잊지 못하여 제물포 고등학교에 양희덕 장학금을 만들어 공부를 잘하고 못하는 것을 기준으로 하지 않고, 가장 가난한 학생에게 장학금을 주어 희망을 갖을 수 있게 하고 있습니다. 본인의 이름을 드러내지 않고 고인이 된 친구를 기리는 겸손한 아름다움이 있습니다.

 

황우여의원은 영어, 독일어, 일본어를 잘 알고 있습니다. 황우여의원은 여러나라에서 유학을 하며, 세계선진국을 공부하여 국제사회를 폭넓게 알고 있습니다. 세계 여러나라를 다니며 세계화 시대를 이끌어가기 위한 공부와 많은 세계지도자 석학들과 교류를 하고 있습니다. 황우여 의원은 어려서부터 부모님께 엄격한 가정교육을 받으며 자랐습니다. 중학교 2학년때부터 가계부를 쓰는 등 검소하고 절약하는 생활이 몸에 베어 깨끗한 정치인 으로서의 자질이 충분하고도 남음이 있습니다.

 

황우여의원은 한나라당 이회창 총재의 핵심브레인으로 20여년간 법조계에서 함께 활동하였고 이 총재께서 감사원장으로 가실 때 황우여후보를 판사직에서 함께 데리고 갈 정도로 아끼고 생사고락을 같이하는 사이입니다. 김영삼 전대통령이 전국구 의원 한사람을 추천하라고 할 때 주저없이 이회창 총재는 황우여 후보를 추천하였습니다.

 

‘사’자가 다 나쁜건아냐?

몇 년 전의 일입니다. 황우여의원은 의원 사이에서도 바쁜 의원으로 소문이 나있습니다. 그날도 하루 종일 동분이주하다 어느덧 해가 저문 지도 한참이 흘렀습니다. 집으로 오는 길엔 이미 어둠이 짙게 물들고 있었지요. 그날따라 생각할 것이 많은지 골똘히 생각에 잠기던 황우여의원이 기사에게 뜬금없이 물었습니다. “요새 소위 상류층이 나온 사람이 문제가 많아. 사회에 모범이 되어야 할 사람들이 부정부패에 휩싸이지 않나, 이런저런 말이 많아 국민들에게 욕을 먹고 있단 말이야. 어때? 문제가 있지?” 기사는 갑자기 물은 말이라 당황해서 “예, ‘사’자 붙은 놈들은 다 죽어야 해요” 라고 퉁명스럽게 대답했습니다. 기사는 순간 ‘아차’ 싶었습니다. 당시 황우여의원은 변호사의 신분을 갖고 있었으므로 소위 ‘사’자 중 1명이었거든요. 황우여의원은 이 후 한마디 없이 인천까지 다가왔습니다. 서울에서 인천의 황우여의원집까진 1시간 30분정도가 걸립니다. 그 긴 시간을 한마디 말도 없이 오니 기사는 아까 일은 까맣게 잊어버렸습니다. 집에 도착하여 황우여의원이 집 문을 열면서 한마디 하였습니다. “이봐! 자네도 기사지? ‘사’자지?”

 

네자리로 돌아가....

황우여의원은 변호사입니다. 의정활동 때문에 거의 활동을 못하고 있지만 지역 내 억울한 사건, 가난한 사람들의 송사를 위하여 변호에 나서는 일이 가끔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의정활동하랴, 지역 행사에 참석하랴, 탈북난민문제, 교육문제, 그 외 여러 인권관련 문제에 황우여의원의 하루는 그야말로 전쟁입니다. 결국, 죽어나는 것은 기사지요... 기사는 그야말로 초주검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황우여의원이 재판정에 들어간 사이 황우여의원의 자리에 의자를 넓게 벌려놓고 단잠에 빠져 버렸습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구비서는 왠지 이상한 느낌이 들어 실눈을 떠 보았습니다. 그런데 세상에... 누가 문을 두드리고 있는게 아니겠습니까? ‘순간적으로 의원님이다, 빨리 일어나야한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워낙 피곤한지라 몸이 마음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의원님, 핸들이 없어졌어요. 키박스도 없고 이거 난리 났습니다” 그러자 황우여의원이 담담하게 말하였습니다. “네 자리로 돌아가”

 

"여기 인천이야"

얼마 전 씨랜드 화재 사건 때의 일입니다. 워낙 많은 사람이 희생되어 사회에 커다란 충격을 끼친 사건이라 당에서 많은 사람이 내려왔습니다. 황우여의원은 인천지역 출신 국회의원으로 누구보다 심각하게 이 사건에 대해 생각하고 문제점을 파악하였습니다. 그래서 이 후 황우여의원은 국회에서 씨랜드 사태의 문제와 해결방안을 조목조목 따지게 되지요. 어쨌든, 현지조사가 끝나고 의원들은 총재가 타고 있던 버스에 올랐습니다. 기사는 본능적으로 차에 올라타 버스를 쫓아갔습니다. 버스는 경인선을 따라 오목교로 접어들었습니다. 그때, 전화벨이 울렸습니다. “나 황우여인데, 지금 어딨냐?” 기사는 “예, 뒤에 있습니다” 라고 대답하였지요. “뒤? 어디? 손을 흔들어봐” 기사는 순간 불길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차 밖으로 손을 내밀며, “여기 있습니다” 라고 대답하였습니다. 황우여의원은 “도대체 어디야? 어디 있는거야?” “예, 오목교를 막 통과하고 있습니다” “....... 여긴 동인천이야, 빨리 오라고~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황우여의원은 당 조사팀을 보내고 다시 근처다방에 들어가 사건 전면에 대해 조목조목 따지고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우리 마누라를 확실히 속일 수 있었는데...”

황우여의원의 홈페이지 개편때의 일입니다. 국회의원 홈페이지라 그 내용이 너무 팍팍해서 비서진은 황우여의 100문 100답이라는 코너를 만들었습니다. 황우여의원이 좋아하는 노래나 감명 깊게 읽은 책 등 일문일답식으로 물어서 그 답변을 적은 것입니다. 황우여의원의 100문 100답에 그 내용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일문일답을 마치고 저녁시간이 되었습니다. 황우여의원 비서진은 근처 찻집으로 갔습니다. 황우여의원은 평소 좀 ‘노랭이’라 횟집을 찾는 일은 특히 드문 일이었습니다. 회는 제부도의 회가 제일 좋다는 등 몇 마디 이야기가 돌아가고 분위기가 화기애애해졌습니다. 비서진 중 하나가 물었습니다. “의원님, 아까 저희가 준비한 질문 중에 하나가 사모님이 첫사랑이냐는 질문인데 의원님을 봐드리느라 뺀겁니다” 황우여의원이 대답하였습니다. “아.... 꼭 물어보지 우리 마누라! 확실히 속일 수 있었는데..”